그가 걸어온 길, 故 노회찬 의원 6주기를 추모하며

2025. 7. 24. 00:17일상다반사

오늘은 노회찬 의원의 여섯 번째 기일을 하루 앞둔 날입니다.

그를 기억하며 그의 삶과 정치 여정,

그리고 그가 남긴 발자취를 돌아봅니다.

 

정치에 별 관심이 없던 저에게도 몇 분의 관심 있는 정치인이 있었습니다.

그분들 중 한 분이셨던 고 노회찬 의원에 대한 글을

그의 기일에 맞춰 써 보고자 합니다.

 

저는 진보가 뭔 지, 보수가 뭔 지,

반백년을 넘게 살아온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안타까운 건 지,

時代가 안타까운 건 지,

여전히 갈림길의 중간에 서 있는 것 같습니다.

 

🌼 고. 노회찬 (魯會燦) 의원

출생: 1956년 8월 31일, 부산 동구 초량동

사망: 2018년 7월 23일 (향년 61세), 서울특별시 중구 신당동

학력:

  • 초등학교: 재송국민학교 (現 재송초)
  • 중학교: 부산동중
  • 고등학교: 경기고
  • 대학교: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가족 관계: 배우자 김지선 여사, 자녀는 없으며, 2남 1녀 중 장남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주요 정치 경력 요약

고 노회찬 의원은 노동운동가로서의 삶을 시작으로 진보 정치의 한길을 걸어왔습니다.

  • 노동운동: 1980년대 중반부터 노동운동에 투신하여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을 창립하고 활동하는 등 노동자의 권익 보호에 앞장섰습니다. 이 과정에서 여러 차례 구속되기도 했습니다.
  • 정계 입문 및 국회의원:
    • 17대 국회의원 (2004~2008):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하며 진보 정치의 대표 주자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삼성 X파일 사건을 폭로하여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 19대 국회의원 (2012~2013): 통합진보당(진보정의당) 소속으로 서울 노원병 지역구에서 당선되었으나, 삼성 X파일 사건 관련 대법원 유죄 확정으로 의원직을 상실했습니다.
    • 20대 국회의원 (2016~2018): 정의당 원내대표로 서울 노원병 지역구에서 다시 당선되어 3선 의원이 되었습니다.
  • 정의당 창당 및 활동: 통합진보당 사태 이후 정의당 창당을 주도하고, 당의 주요 리더로서 진보 정당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특히 20대 국회에서는 정의당 원내대표로서 활발한 의정 활동을 펼쳤습니다.
  • 논객 및 소통: 날카로운 비판 의식과 탁월한 언변으로 대중에게 큰 인기를 얻었으며, 방송과 언론 활동을 통해 진보 정치의 대중화에 기여했습니다. 그의 어록은 현재까지도 회자될 정도로 많은 사람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 고 노회찬, 그의 일생과 정치 역경

고 노회찬 의원은 1956년 부산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습니다.

대학 시절부터 노동운동에 투신하여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을 창립하는 등 노동자의 권익 보호를 위해 헌신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여러 차례 구속되기도 하는 등 수많은 정치적 역경을 겪었습니다.

그는 노동운동가로서의 삶을 통해 진보 정치의 기반을 다졌고,

이후 정계에 입문하여 17대, 19대, 20대 국회의원을 지내며 3선 의원이 되었습니다.

 

특히 2005년 삼성 X파일 사건에서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의 불법 경영 승계와 이학수 삼성 구조조정본부장과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의 불법 대선 자금 전달 등의 내용이 담긴 녹취록을 공개하며 이른바 "떡값 검사" 명단을 폭로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그는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어 6년간의 법정 다툼 끝에 2013년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되어 의원직을 상실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2016년 다시 국회에 입성하며 진보 정치의 상징적인 인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 그의 어록(語錄)

고 노회찬 의원은 날카로운 비판 의식과 유머를 겸비한 촌철살인의 언변으로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의 수많은 어록은 현재까지도 회자되며 많은 사람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습니다.

  • "50년 동안 한 판에서 계속 삼겹살을 구워 먹어 판이 새까맣게 됐으니 삼겹살 판을 갈아야 한다." (2004년 17대 총선 당시 '판갈이론')
  •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고 하는데, 1만 명만 평등한 것 아닌가." (17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첫 국정감사에서 사법부를 질타하며)
  • "폐암 환자를 수술한다더니 폐는 그냥 두고 멀쩡한 위를 들어낸 의료사고와 무엇이 다른가." (삼성 X파일 사건으로 의원직을 상실한 후 판결에 대한 심정을 비유하며)
  • "냉면집 주인이 '나는 대장균에게 속았다. 대장균 단독 범행'이라고 얘기하는 격." (국민의당 제보 조작 사건에 대한 논평)
  • "선택의 기로에서 어떤 선택이 최선의 선택인지 당장 알 수 없을 때는 가장 힘들고 어려운 길을 걸어라. 그것이 최선의 선택일 것이다." (그의 삶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말)

🥀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고 노회찬 의원은 2018년 7월 23일,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과 관련하여 '드루킹' 김동원 씨 측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했다는 의혹에 휩싸여 특별검사의 수사를 받던 중 스스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당시 그는 유서에 "누구를 원망하랴. 참으로 어리석은 선택이었으며 부끄러운 판단이었다. 잘못이 크고 책임이 무겁다. 무엇보다 어렵게 여기까지 온 당의 앞길에 큰 누를 끼쳤다. 이정미 대표와 사랑하는 당원들 앞에 얼굴을 들 수 없다."라고 남겨, 자신의 선택이 당에 미칠 영향과 개인적인 도덕적 책임을 통감하고 있었음을 시사했습니다.

돈을 받은 사실은 인정했지만 청탁은 없었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평생을 진보 정치의 대의와 깨끗한 정치 실현을 위해 노력했던 그에게 불법 자금 수수 의혹은 감당하기 힘든 짐이었을 것으로 해석됩니다.


🪻 그의 사후 정의당의 쇠락

고 노회찬 의원의 비극적인 사망은 정의당에 큰 충격과 상실감을 안겨주었습니다.

사망 직후에는 고인에 대한 추모 분위기와 진보 정치에 대한 재조명으로 인해 당원 가입과 후원금이 급증하고 지지율이 상승하는 일시적인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그의 사망 직후 정의당의 지지율이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을 제치고 제2당으로 올라서는 '골든크로스'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정의당은 고 노회찬 의원의 부재를 메우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그의 빈자리는 단순히 한 명의 국회의원을 잃은 것을 넘어, 진보 정치의 상징이자 대중적 리더십의 큰 축을 잃었다는 의미가 컸습니다.

 

이후 정의당은 여러 차례 선거에서 부진한 성적을 거두고, 당내 여러 논란과 정책적 혼선 등이 겹치면서 과거와 같은 존재감과 지지율을 회복하지 못하고 쇠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고 노회찬 의원이 생전 강조했던 '6411 버스'와 같은 서민과 노동자의 삶을 대변하는 진보 정당의 이미지 또한 점차 흐릿해졌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고 노회찬 의원은 비록 불명예스러운 마지막을 맞았지만,

그의 삶 전체를 통해 보여준 약자와 소수자를 위한 헌신, 불의에 대한 저항, 그리고 촌철살인의 유머와 통찰력은 여전히 많은 사람의 기억 속에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 앞서 언급된 주요 사건들에 대한 요약

 

1.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 사건:

1980년대 후반 노동운동이 활발하던 시기, 고 노회찬 의원이 인천 지역 노동자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창립한 노동운동 단체와 관련된 사건입니다.

이 활동으로 인해 고 노회찬 의원은 구속되는 등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2. 삼성 X파일 사건:

2005년 고 노회찬 의원이 공개한 삼성그룹의 불법 경영 승계 및 불법 대선 자금 전달 의혹이 담긴 녹취록 사건입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이른바 '떡값 검사' 명단이 폭로되었고,

고 노회찬 의원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어 의원직을 상실했습니다.

이 사건은 한국 사회에 재벌과 검찰의 유착 관계에 대한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X파일은 1997년 안기부(옛 국가안보기획부)가 삼성그룹 고위 인사 간 대화를 불법 도청한 녹취록입니다.

이 녹취에는 고 이건희 삼성 회장과 홍석현 당시 중앙일보 회장의 대화 등이 담겨 있었고,

검사들에게 '떡값'을 제공한 정황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2005년 고 노회찬 의원은 이 녹취록에 언급된 검사 7명의 실명을 공개했고,

이를 기반으로 삼성의 로비 정황을 폭로하며 특별검사 도입을 촉구했습니다.

 

그 결과 노 전 의원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과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을 받았고,

1심에서는 집행유예와 자격정지 판결을 받았지만 항소심에서는 무죄가 선고되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에서는 형사 재판에서 유죄, 민사 재판에서는 공익을 인정하며 무죄로 교차되는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2013년 대법원 최종판결로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유죄가 확정되며 노 전 의원은 의원직을 잃게 되었습니다.

 

노 전 의원은 판결 직후 강한 어조로 비판을 쏟아냈습니다.

그는 유죄판결을 “공공의 비상한 관심사”가 아니라고 본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하며,

“법 앞에 만 명만 평등하며 권력집단만 보호받는” 사법부에 대한 근본적 의구심을 제기했습니다.

 

고 노회찬 전 의원의 행동은 권력감시와 국민의 알 권리를 중요시하는 민주주의 정치인의 기준에 비춰볼 때,

상당히 의미 있는 공익 행위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거대 재벌과 사법·언론 권력의 유착 의혹을 폭로했고,

백보 양보해서 도청 자료라는 비정상적 경로로 입수된 정보였더라도 사실에 기초해 공익을 추구한 점은 정당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항소심 재판부의 무죄 판단은 이를 뒷받침하며 “공익적 목적에 부합했고 국회의원의 직무 행위이므로 면책특권이 적용된다”라고 판시했습니다.

 

반면, 형사 재판부와 대법원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을 이유로 유죄를 인정했습니다.

이 부분은 법리 해석의 차이로 보이며, 제도적 한계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개인적으로는, 노회찬 의원의 행동은 정치적 소명의 본보기였으며—특히 권력형 비리에 과감히 맞선다는 측면에서—민주주의적 가치 실천이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고 봅니다.

 

물론, 법 체계상 절차법과 실체법이 충돌하는 현실 속에서,

그의 행위가 합법에 완전히 부합했는가에 대한 법적 평가는 다를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가 “다시 그 순간이 온다면 똑같이 행동하겠다”고 말한 것처럼,

정의와 공익을 위해 몸을 던진 정치인으로 기억되고 평가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삼성과 검사들 사이에 고리대금업 같은 돈 흐름이 있었는데, 그걸 무시하고 감정만 쫓았던 사법부 판결이야말로… 진짜 ‘X파일’급 해괴망측한 일이 아닐까요?”

 

3.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

2018년 '드루킹' 김동원 씨 일당이 인터넷 기사에 조직적으로 댓글을 조작하여 여론을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사건입니다.

이 사건 수사 과정에서 고 노회찬 의원이 드루킹 측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했다는 의혹이 불거졌고,

이는 고 노회찬 의원의 비극적인 선택으로 이어졌습니다.

 

고 노회찬 의원이 드루킹(김동원) 측으로부터 받은 금액은 총 5천만 원이었습니다.

유서와 당시 언론 보도를 종합해 보면, 이 금액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3천만 원: 2016년 3월 드루킹 김동원 씨가 고 노회찬 의원의 보좌관에게 건넨 것으로 알려진 금액입니다.

이 돈은 고 노회찬 의원의 정치 활동 비용으로 사용되었다고 전해졌습니다.

구체적인 사용처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선거 자금 또는 일반적인 정치 자금으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2천만 원: 2016년 총선이 끝난 후 김동원 씨가 다시 노회찬 의원 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진 금액입니다.

이 돈은 고 노회찬 의원의 선거 사무실 운영비 등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도되었습니다.

고 노회찬 의원은 유서에서 돈을 받은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청탁과 관련이 없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하지만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것은 사실이며, 이로 인해 큰 심적 부담을 느꼈던 것으로 해석됩니다.

 

그의 죽음은 한국 사회에 큰 울림을 주었고, 진보 정치의 미래에 대한 숙제를 남겼습니다.

벌써  글 쓰는 시간이 지나, 기일이 되었습니다.그 곳도 살만 한 곳이죠?편히 잠드십시요!